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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 “영화 ‘카트’가 꼭 내 얘기처럼 다가왔어요”

[인터뷰] 염정아 “영화 ‘카트’가 꼭 내 얘기처럼 다가왔어요”

등록 2014.11.14 15:33

김재범

  기자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1991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대중들에게 염정아는 처음 자신을 알렸다. 고양이를 떠올리는 그의 얼굴은 도도하고 섹시한 도시적인 이미지의 대명사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장동건과 함께 한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부터 그는 그렇게 ‘도시’와 함께 했다. 커리어 우먼, 부잣집 딸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잣집 며느리, 사모님 그렇게 염정아에겐 화려하면서도 회색빛의 콘크리트가 어울리는 다소 차가운 이미지가 자리하게 됐다. 그건 염정아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대중들이 그에게서 떠올린 모습이었을 것이다. 데뷔 24년이 지난 지금 염정아는 일대 변신을 선언했다. 영화 ‘카트’가 제작된 단 소식에 놀랐다. 우리사회가 터부시하고 금기시하는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상업영화란 점 때문이다. 그런데 그 한 가운데 염정아를 세운단다. 평생 손에 물 한 번 적셔 보지 않았을 그가 어떻게 하루 한 시간 그리고 1분 1초를 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뜨거운 투쟁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영화 개봉 전 만난 염정아는 많이 걱정을 하고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좋은 뜻으로 만든 영화였다. 누군가는 꼭 해야 될 얘기였다. 그런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시나리오)의 한 가운데 서야만 하는 자신의 존재감이 너무도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건 당연한 감정이다. 그는 ‘카트’를 읽고 ‘자신의 얘기 같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사실 그래요. 배우들도 찾아주시는 분이 없으면 그냥 백수에요. 비정규직이죠. 이런 말도 너무 조심스럽죠. 진짜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삶을 위해 싸우시는 분들을 위해서는요. ‘카트’ 속 선희란 인물이 꼭 저 같았어요. 단순하게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사회성 강한 영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전 엄마로서 선희가 느끼는 가정 문제 아이와의 갈등 동료들과의 관계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죠. 나라면 이랬을까. 뭐 그런 감정? 그리고 명필름이 제작한다는 것도 아주 강하게 끌렸어요. 심재명 대표가 선택한 영화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죠.”

그는 ‘카트’에서 순종적이다 못해 굴복하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게 염정아의 모습은 절대 아니란 것은 누구도 다 아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미지 혹은 선입견이 무섭다고 지금까지 그가 보여왔던 쎈 모습과 대비돼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화장기 없는 기미낀 얼굴과 무언가에 억눌린 듯 구부정한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염정아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니 놀라웠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하하하. 그렇게 보였나요. 제가 그렇게 독한 여자는 아니에요. 나 얼마나 순종적인 여자인데(웃음). 가장 걱정되는 게 염정아란 배우가 ‘한선희’란 옷을 잘못 입었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무서웠죠. 고민 많이 했죠. 연구도 했고. 선희란 인물이 어떻게 생각할까. 몇 년 동안 마트에서 일한 아줌마가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 사실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들 얼마나 단정하고 멋지게 꾸미고 하시는데요. 근데 선희는 염정아가 연기를 하기 때문에 그러면 선희가 안될 것 같더라구요.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민낯으로 기미만 제가 직접 그려서 표현했죠. 놀랍다는 말 칭찬이죠? 하하하.”

자신을 ‘동탄 아줌마’라고 칭하는 염정아는 ‘깍쟁이’ ‘이쁜이’ 아줌마 답지 않게 혼자 마트에서 장도 보고 시장도 자주 다닌단다. 그는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몇 년차 주부인데”라며 손사래다. ‘카트’전에는 마트에서 괜시리 퉁명스럽게 대하기도 하고 신경 쓰지도 않았던 점원들이 지금은 당연히 다르게 보일 것 같았다. 유명인이라 마트에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점원들의 뜬금없는 친절과 태도가 사실 때론 불편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번 영화가 자신에게 주는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았다. 생각이 바뀌니 보이는 게 바뀌었다고.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사실 그분들이 특별한 분들은 아니잖아요. 이번 영화를 하면서 그분들을 따로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저도 엄마에요. 그냥 정규직 비정규직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직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그분들과 통한다고 하면 너무 건방질까요. 이해하려고도 동화되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엄마로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모성애가 더 앞선 것 같아요. 영화 찍고 나서는 좀 더 그분들에게 조심한다기보단 관심을 두게 됐죠. 특별한 배려나 친절이 아닌 한 번더 웃어주고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정도. 사실 그게 정말 도움이 되거든요. 안그럴까요.”

‘카트’는 꽤 많은 배우들이 함께 이끌어 가는 스토리다. 주연과 조연이 간격이 나눠진 영화가 아니다. 각자의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조각들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며 돌아가는 구조다. 그래서 염정아는 자신 혼자 이끌어 가야 하는 부담감이 조금은 덜했을 것 같았다. 물론 한 번도 겪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인물이고 캐릭터였단 사실도 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아이고 그래도 부담 많았죠. 20년을 넘게 연기하면서 이런 배역은 정말 처음이었는데(웃음). 선희란 인물이 처음과 끝의 감정선이 완전히 틀려요. 내적 성장에 대한 타당성이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 안 되면 사실 진짜 공감하기 힘든 영화에요. 그게 진짜 부담이었어요. 선희가 진짜 약한 인물이에요. 글쎄요. 약하다는 게 좀 여러 가지 해석을 낳죠. 세상을 몰라서 두려운 것도 있고. 하지만 모성애는 너무 강해요. 그리고 정직하고. 겉은 약하지만 속은 강한 인물. 그 점을 잡고 점차 변해가는 선희의 모습을 상상했어요.”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문정희와 처음 호흡을 맞췄다. 영화 속에서도 두 사람은 유독 감정이 부딪치는 장면이 많았다. 염정아는 문정희에 대한 질문에 눈시울을 붉어지는 듯했다. 특히 영화 속에서 공중전화 장면을 언급하며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정말 많이 울었던 부분이다”고 귀띔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그 장면이 진짜 감정이 많이 이입됐어요. 감정 조절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장면이에요. 문정희와는 이번 영화에서 처음 만났는데 정말 많이 친해졌어요. 그래서인지 염정아 문정희가 아니라 선희와 혜미로서의 느낌이 서로에게 많이 작용했던 같아요. 리허설때 ‘혜미야 나 선희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목소리만 들어도 문정희가 눈물 날 것 같다고 그만 듣겠다고 하더라구요. 참 많이 친해졌고 많은 감정을 나눴죠.”

기억 나는 장면은 또 있다. 마트 직원들이 물대포를 맞는 장면이다. 배우들 모두가 직접 물대포를 맞으며 고생을 했다. 엄청난 고생이 피부로 와닿았다. 그 장면에선 금새 다시 웃음기를 띠우며 고개를 숙였다. 염정아는 손사래를 치며 “말도 말라”고 웃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시나리오 읽을 때도 진짜 그 장면은 겁을 많이 먹었어요. 이건 진짜로 훅 가겠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촬영할때는 이미 제가 선희가 돼 있었어요. 그렇게 힘든 건 모르겠더라구요. 다들 그냥 마트 직원이 돼 있었어요. 나중에는 ‘더 쏴줘요 더’라며 감독님한테 소리까지 쳤다니까요. 하하하.”

깍쟁이 같던 ‘동탄 이쁜이 아줌마’는 인터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카트’의 한선희가 돼가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선 감정이 이입돼 소리를 치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선 눈시울을 붉히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내가 또 언제 이런 작품을 만나보겠나”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아직 차기작이나 그런 건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냥 다음을 기대하고 있어요. 제가 언제 ‘카트’ 같은 영화를 만날 수나 있겠다고 상상을 했겠어요. 진짜 배우로서 행복했죠. 배우 염정아가 아직은 이런 모습도 보여줄 수 있구나란 마음에 참 뿌듯했어요. 즐거웠죠. 조만간 다시 이렇게 즐거울 수 있겠죠?”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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