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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UAE회담 앞두고 항공업계 '속앓이'···"중동항공사에 시장 뺏길라"

산업 항공·해운

UAE회담 앞두고 항공업계 '속앓이'···"중동항공사에 시장 뺏길라"

등록 2023.10.11 18:55

수정 2023.10.12 10:55

박경보

  기자

한국발 유럽행 환승수요 잠식 우려 확산주 7회 증편시 연 1300억원 피해 예상항공업계 "국가적 차원 대책마련 시급"

UAE회담 앞두고 항공업계 '속앓이'···"중동항공사에 시장 뺏길라" 기사의 사진

오는 12일 열리는 한국과 아랍에미레이트(UAE)의 항공회담을 앞두고 항공업계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UAE의 요구대로 항공편 공급을 늘려주면 중동항공사에 시장을 뺏길 가능성이 높아서다. 일각에선 중동항공사들의 시장교란을 막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대한민국과 UAE 간 항공노선에서 국내 항공사들은 '약자'로 여겨지고 있다. 양국 항공협정상 주 15회를 운항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의 경우 대한항공만 218석짜리 A330을 주 7회 운항한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수요 부족으로 올해 4월에서야 재개했다.

반면 UAE의 경우 에미레이트항공이 초대형기인 517석짜리 A380을 주 7회 띄우고 있고, 에티하드항공도 327석짜리 보잉787을 주 7회 운항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한-UAE 간 공급은 약 41만석 규모였다. 하지만 실제 양국간 수요는 공급의 36% 수준인 15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AE 항공사들이 공급을 공격적으로 늘린 배경은 한국발 유럽행 환승 수요를 잠식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에미레이트항공의 69%, 에티하드항공의 62%는 환승객으로 집계되고 있다. 게다가 에티하드항공까지 A380을 띄울 경우 하루 중동노선 공급석만 1000석을 훌쩍 넘는다.

이미 에티하드항공은 2019년 7월부터 2020년 3월까지 A380을 매일 운항한 적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하루 공급석 기준으로 에미레이트항공과 에티하드항공의 단 하루의 운항편이 대한항공의 주 5회를 운항하는 편수와 맞먹는다는 의미다.

국내 항공사들은 만약 UAE의 증편 요구를 허용할 경우 국적사의 중동 직항노선에 더욱 심한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UAE 간 주 7회가 추가 증편되면 연간 1300억원 수준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항공사 시장교란 확산···정부 보조금 수령 등 공정경쟁 '흔들'
UAE 등 중동항공사들은 막대한 보조금을 바탕으로 재정 부담에 대한 걱정없이 국제항공노선을 확장하며 단기간에 몸집을 부풀리며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 같은 보조금 수령 및 혜택으로 공정경쟁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UAE와 카타르의 경우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0여년간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국영 항공사에게 520억달러, 한화로 약 66조원의 비정상적 혜택을 제공해왔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게다가 노동조합 결성 금지, 근로자 권리 제한 등 제도적 장치로 낮은 인건비를 유지 중이고, 중동에 취항하는 다른 국적 경쟁항공사들이 당연히 지출해야 하는 비용인 소득세, 유류세 납부 의무도 없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중동항공사들은 국가로부터 대량의 보조금을 받아 챙기며 시장을 교란해 영향력을 넓혀나가고 있다"며 "이 같이 공정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UAE에 항공편 공급을 늘려주게 되면 결국 국내 항공시장이 중동항공사들에 의해 잠식당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대한항공 보잉 787-9 항공기. 사진=대한항공대한항공 보잉 787-9 항공기. 사진=대한항공

실제로 전 세계 항공사들은 중동 피해 노선의 공급을 줄이거나 철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2년 UAE와 항공자유화 항공협정을 체결했는데, 중동항공사들의 잇따른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다.

델타항공의 경우 2016년 애틀랜타~두바이 노선, 유나이티드항공 또한 같은 해 워싱턴~두바이 노선을 단항했다. 올해 3월에 들어서야 유나이티드항공이 주 7회 뉴욕(뉴어크)~두바이 노선을 띄웠지만, 이미 미주~중동 시장의 패권은 중동항공사에게 돌아간 뒤였다.

호주 콴타스 항공은 중동항공사의 저가 공세로 구주 노선의 수송객이 매년 대폭 감소해 어쩔 수 없이 2003년 로마 노선, 2004년 파리 노선, 2013년 프랑크푸르트 노선을 폐지했다.

유럽 지역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동항공사들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인해 유럽 항공사들의 실적악화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중동노선 및 아시아행 노선의 운항을 잇따라 중단한 바 있다.

루프트한자의 경우 2015년 동남아시아 및 아프리카행 노선 20여개 운항을 중단했으며, 에어프랑스는 아부다비, 도하, 제다, 첸나이, 하노이, 프놈펜 등의 운항을 잇따라 중단하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미국‧유럽, 비정상적 경쟁에 대책 마련 나서
UAE 항공사들은 경쟁사들의 직항 노선에는 덤핑에 가까운 가격 정책을 구사한다. 대신 경쟁사들이 취항하지 않는 노선에는 고가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두바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노선에는 대폭 할인된 가격의 항공권을 제시해 한국 항공사들의 유럽 수요를 빼앗아가고, 국적 항공사들이 취항하지 않는 아부다비 노선 등에는 비싼 항공권을 판매하는 식이다.

이 같은 비정상적 경쟁체제가 이어질 경우, 미주 및 유럽 항공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 항공사들이 노선을 축소하거나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UAE 항공사들의 무분별한 진입으로 소비자의 선택권도 제한되고, 가격이 비싼 항공권을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인천국제공항 주기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제공인천국제공항 주기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에 세계 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미국 항공사들은 2015년 2월 관련 보고서를 발간하고, 정부에 오픈스카이(Open Skies) 정책을 강력히 지지하나 공정하고 대등한 경쟁을 보장받기 위해 현재 오픈스카이 협정에 규정된 바와 같이 중동 국가들과의 재협상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재협상 기간 동안 중동 항공사들의 미국 내 신규노선 취항을 잠정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결정은 미국 의회에서도 지지한 바 있다.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2015년 3월에는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공동으로 중동항공사의 보조금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이들과의 공급력 협상을 재추진하는 한편, 보조금 금지규정을 실효성 있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정부도 같은 해 5월 EU와 중동국가간 공급력 개정협상이 필요하며, 이와 같은 협상이 완료되지 않는 한 중동항공사에 암스테르담 노선 추가 운수권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중동항공사들을 제지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2015년 12월 EU 집행위원회는 에미레이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등이 정부 보조금 수령으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어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공정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항공협정 개정 추진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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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업계 "국가 기간산업 전략적 보호조치 필요"
유럽과 대양주를 잇는 허브 공항이었던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중동항공사들의 거센 공격에 밀려 2인자로 밀려났다. UAE의 증편 요구를 수용할 경우 인천국제공항 역시 허브공항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중동항공사의 운항횟수를 주 7회로 늘려줄 경우 한국에서 약 1900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중동항공사로 인해 1개 노선이 폐지될 때 1500개의 일자리가 감소했고, EU도 2000년 이후 EU 항공사 전체 직원의 약 18.5%인 8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항공협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단기간의 경제협력이나 성과보다는 미국과 유럽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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