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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후진국형 사고 없애려면 안전-치장 비용 분리해야

오피니언 기자수첩

후진국형 사고 없애려면 안전-치장 비용 분리해야

등록 2023.09.14 16:50

장귀용

  기자

reporter
후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붕괴사고가 2~3년 사이에 몇 건이나 발생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모양새다. 소를 잃은 뒤 외양간은 안 고치고 책임소재만 찾는 느낌이다.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 공사 현장 붕괴사고 후 수많은 '죄인'이 소환됐다. 시공사의 부실시공을 탓하기도 하고 설계 오류나 자재 부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자체나 감리도 비판대에 올랐다. 정부는 감리업체 내 'LH전관'을 대역죄인으로 규정하고 계약중단과 수사에 돌입했다.

업계에선 문제로 지적된 모든 것들이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경제는 모든 것을 비용과 이익으로 계산하는 자본주의 원리로 돌아간다. 자본주의의 맹점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탓에 무형의 가치가 쉽게 외면된다는 것이다. 안전이나 인간, 환경, 정직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일어나는 사고들은 모두 이런 무형의 가치를 외면한 탓에 벌어졌다.

이웃 나라 일본에선 구조계산과 시공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구조계산적정성판정제도'를 운영하면서 건물이 안전하게 설계됐는지를 정밀하게 검사한다. 주택판매업체들이 샘플하우스(우리나라의 모델하우스)를 운영할 때 기둥과 벽체, 마감재 등 실제로 시공되는 구성품의 샘플을 제공하고 30년 무상 수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일본이 이처럼 철저하게 구조안전성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 2005년 아네하건축사무소에서 내진 강도를 조작한 구조계산서를 작성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아네하건축사무소는 철근이나 기둥 두께를 가늘게 하는 등 부실한 설계와 시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나라에서 비슷한 선례가 발생한 지 약 20년 만에 우리나라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본질적인 시스템 개선보다는 처벌에 방점이 찍혀있다.

일각에선 이번 붕괴 현장에 적용한 '무량판구조'를 죄인으로 지목한다. SNS에선 '무량판구조 판별법'이라는 내용이 돌고 있다. 본질이 아닌 현상만으로 문제 여부를 따지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실 무량판구조는 공사비가 많이 드는 라멘(기둥‧보)구조와 소음과 구조변경에 불리한 후진국형 벽식구조를 절충하기 위해 개발된 공법이다. 보가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지붕)에 연결되는 방식이다. 무게를 각각의 기둥으로 분산해 주는 보 대신 보강철근으로 대체하는 시공법이다.

만약 건물의 안전함과 튼튼함과 직결되는 '구조체'에 드는 비용을 충분히 인정받고 낼 수 있다면 벽식이나 무량판으로 지을 이유가 없다. 보를 설치한 만큼 높아지는 층고와 층고가 높아져 같은 높이 대비 가구 수가 줄어드는 것도 '라멘구조'가 외면받는 이유다.

시공품질도 문제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하도급은 품질 저하의 '원흉'이다. 하청으로 내려갈수록 단가는 싸지는데 품질을 내려간다. 비용이 저렴하게 책정되니 철근이나 콘크리트를 빼먹거나 품질을 낮추는 것.

인건비도 비싸다보니 국내의 실력 있는 숙련공의 자리를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인 조공과 기술공이 채우고 있다. 말도 안 통하는데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밀함을 요구하는 '무량판구조'를 제대로 시공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아파트 입찰 현장을 가보면 안전과 직결되는 '구조'보다는 화려한 외관이나 번쩍번쩍한 내부를 치장하는 '마감재' 홍보가 중심이다. 본질이 전혀 다르지만 시공사 선정에선 '공사비'라는 이름으로 '퉁'쳐진다.

안전에 쓰는 비용을 분리해 철저히 관리하고 그 가치가 반영될 수 있는 공사비‧분양가 책정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건축비' 인상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건축비를 쪼개서 올려야 할 비용과 통제해야 할 비용을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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