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등록 :
2019-11-19 15:28

수정 :
2020-01-03 13:30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⑳ 손도장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스무 번 째 글의 주제는 ‘손도장’이다




손도장 ; ‘오늘’ 이라는 캔버스에 무슨 자국을 남길 것인가


오늘 아침, 거울이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그것에게 가만히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너는 누구인가?” 혹은 “나를 쳐다보는 저 자는 누구인가?” 저자를 응시하는 나는, 내가 기대하고 연습해온 그런 인간인가? 아니면 보고 싶지 않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인간인가? 저 인간의 눈은 미래에 이루어야할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가? 아니면, 수심으로 가득 차 어제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인간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현대를 연 한 청년이 있었다. 아니 그 질문으로 그린 그림을 유작으로 남긴 화가다. 19세기 프랑스 화가로 타히티에서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폴 고갱(1873–1903)은 자신의 유작 그림 왼편 상단에 세 문장을 남겼다. 인생의 세 가지 수수께끼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은 단호하고 진실해서 나를 항상 당혹스럽게 만든다. 첫째,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생물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학자들은 생물은 무생물에서 생겨났다고 ‘믿는다’. ‘없음’은 ‘있음’의 모체라고 추정한다. 거의 신앙수준이다. 138억년 전 ‘없음’을 기반으로, 빅뱅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우주가 생겨났다고 믿는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이 <고백론>에서 주장한 ‘크리아치오 엑스 니힐로’ 즉, ‘무에서의 창조’라는 우주의 핵심을 말하지 않았을까? 유관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씨가 어딘가에서 날라 와, 저 앞산을 울창한 숲으로 만들었다.

둘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상의 수많은 동물들과 무엇이 다른가? 인간만이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안다. 고대 이스라엘사람들은 인간을 히브리어로 ‘아담’adam이라고 불렀다. ‘아담’은 ‘붉은 흙’이란 의미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풍년을 보장하는 옥토가 바로 ‘붉은 흙’이며 동시에 최고의 토기를 만들기 위한 흙도 ‘붉은 흙’이다. 인간에게 생명의 숨이 붙어있을 때, 인간은 ‘신의 형상’을 지닌 거룩한 존재지만, 그 숨이 사라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존재다. 자신이 순간을 산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은 몇몇 인간들은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기술을 발견하였다. 그 기술이 바로 ‘예술’이다. 인간은 음악, 미술, 조각, 농업, 문자 그리고 도시 등을 발견하여 문명을 구축하였다. 영국의 스톤헨지,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은 순간을 안타까워하는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욕망의 물건들이다.

셋째,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사후세계에 한번 들어서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영생을 얻기 위해, 인류최초의 도시인 우룩Uruk의 왕좌와 왕복을 버리고 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길가메시는 절친 엔키두가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그 지하세계를 수메르어로 ‘쿠르’Kur라고 하는데, 그 별칭이 ‘돌아올 수 없는 땅’이다. 그 사후세계는 마치 다시 되 돌릴 수 없는 과거와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생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땅에서 펼쳐지고 있다. 빅뱅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변화하는 공간으로 구성된 우주의 문법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 존재하는 만물들은, 그 문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우리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날쌔게 지나가는 과거와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후라는 미래 사이의 순간을 사는 존재들이다.

이런 질문들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자신을 더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 진화시킨다. 인간은 기원전 3만5000년경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유인원)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정말 지혜로운 유인원, 인간)가 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는 쇼베 동굴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3만3000년의 존재했던 쇼베 동굴은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 퐁다르크 지역에서 1994년에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이 동굴은 메머드, 들소, 양, 말과 같은 초식 동물들 뿐만 아니라 사자, 표범, 곰, 하이에나와 같은 육식동물들이 그림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마치 살아서 달리고 있는 것처럼 동굴 벽에서 유영하고 있다. 이 동굴 안에는 순간을 아쉬워하는 인간들이 남긴 특별한 작품들이 있다. 바로 손도장이다. 이 손도장의 주인은 아마도 이곳에서 수많은 벽화를 그린 예술가일 것이다.

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원래는 매머드를 그리려고 목탄을 들었다. 윤곽을 그리기 시작하다 이내 멈췄다. 매머드를 그리는 자신의 손을 한참 보았다. 그리고 다른 방식의 그림을 고안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벽에 댄 채, 입에 황토색 염료를 머금고 손을 향해 뿜었다. 손 주변에 물감이 묻어 손바닥의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신처럼, 흙으로 만들어진 깊은 동굴 안에 자신의 입김을 쏟아냈다. 그랬더니, 그 손이 마치 ‘살아 숨 쉬는 영’이 되었다.

이런 기법을 ‘네거티브 페인팅’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표현하려는 대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그 주위를 메움으로서 손바닥의 모양을 선명하게 표시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겸손을 언급한 신약성서 <빌립보서> 2장7절에 등장하는 “오히려 자기를 비워”라는 문구는 ‘네거티브 페인팅’의 한 예다. 이 문구에 대한 그리스어 원문은 ‘헤아우톤 에케노세’heauton ekenōse다. ‘비움’을 의미하는 ‘케노시스’kenosis는 수동적이거나 정적인 행위나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담보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혁신하겠다는 의지다. ‘비움’의 대상은 ‘헤아우톤’ 즉 ‘자기-자신’이다. 자신을 온전히 비울 때, 비로소 자신이 빛난다. 인류 최초의 예술가가 자신의 손을 ‘빔’의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빛나는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오른 손을 그렸다. 엄지가 짧고 두툼하다. 그는 특이한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을 지니고 있다. 이 두 손가락의 아래가 거의 붙었다. 그는 이 손가락 흔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너는 오늘이라는 캔버스위에 무슨 자국을 남길 것인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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