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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서울역 앞 메머드 건물 서울스퀘어···김우중회장 부터 정창선 회장까지

부동산 건설사 랜드마크로 보는 건설社 흥망성쇠 ⑥대우건설

서울역 앞 메머드 건물 서울스퀘어···김우중회장 부터 정창선 회장까지

등록 2022.09.08 16:20

수정 2022.11.14 16:12

김소윤

  기자

대한민국 서울역 바로 앞 웅장한 건축물 '서울스퀘어'옛 대우그룹 시절 '대우빌딩'으로 불려, 현재는 매각돼대우 성공신화 주인공 '김우중 회장' 때 핵심인재 모여이후 그룹 해체되며 정치외풍 등 고난의 역사 시작돼

서울역 앞 메머드 건물 서울스퀘어···김우중회장 부터 정창선 회장까지 기사의 사진

서울역 바로 건너편에는 웅장한 건물 한 채가 있는데 바로 '서울스퀘어'다. 현재 이 건물의 소유는 NH투자증권으로 되있지만 원래 주인은 국내 굴지의 대형건설사 중 하나인 대우건설로 대우센터빌딩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지난 1977년 빌딩이 준공되면서 대우그룹의 사옥으로 사용됐으며 서울의 거대한 랜드마크로서 오랫동안 군림해왔다. 그러나 과거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서울역앞 대우건설빌딩으로 바뀌었다가, 이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게 된다. 즉 서울스퀘어는 대우건설의 '흥망성쇠' 역사를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대우건설은 그룹해체 이후 '대우'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는 몇 안되는 기업 중 하나다. 대우건설이 현재와 같은 굴직한 건설사로 도약한 데는 대우그룹의 창업주이자 초창기 시절부터 대우건설 성공신화를 쓴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매우 연관돼 있다.

대우건설은 1973년 김우중 전 회장 대우실업이 영진토건을 인수해 직원 12명으로 세운 회사다. 이 때 건설업을 진출하게 됐는데 이 당시를 대우건설 창립 연도로 본다. 이후 1974년 상호를 대우개발(주)로 변경했으며 1977년 국내 최대의 오피스 빌딩인 대우센터빌딩, 즉 현재의 서울스퀘어를 준공하게 된다. 김우중 전 회장은 이 외에도 동작대교와 서울지하철 2호선, 88올림픽도로,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 굵직한 공사를 맡았다. 이후 1981년 대우실업(주)와 합병하면서 (주)대우가 출범하게 됐고, 존속법인을 구 대우개발로 했다. 이에 따라 (주)대우의 건설부문으로 개편됐다. 즉 당시만 해도 대우건설은 대우그룹의 건설부문 중 하나였다.

대우건설은 설립 3년만에 해외건설업 면허를 취득하게 됐는데 1976년 남미 에콰도르 키토시 도로포장공사를 수주, 국내 건설사 중 해외시장에 처음 진출하며 보폭을 넓혔다.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당시로는 불모지였던 아프리카 시장으로 진출해 해외 사업의 터를 닦았다. 특히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카다피 정권의 연이은 테러로 국제사회가 리비아에 각종 제재를 가하면서 기업들이 리비아에서 철수했지만 대우건설은 끝까지 남아 현장을 지켰다. 대우건설은 이 과정에서 리비아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었고 이후 굵직한 사업을 추가로 따내면서 당시 건설 붐이 일던 중동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렇듯 회사가 탄탄대로를 걷게 되자 당시 대우건설에는 핵심 인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또 이후인 1999년에는 아파트 브랜드 '대우 드림타운'을 런칭하기도 했다.

이렇듯 탄탄대로만 걸을 것 같던 대우건설에게 첫 시련이 닥치게 된다. 아니, 지난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를 하게 되면서 이 때부터 대우건설에게는 인수→재매각→인수라는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잔인한 운명에 들어서게 된다.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주)대우 건설부문은 대우건설로, 무역부문은 대우인터내셔널로 각각 분할됐으며, 기존 (주)대우는 부실자산 등을 모두 떠안고 파산절차에 들어간다.

2001년 3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인수하게 되면서 새 주인을 찾기 위한 매각 작업에 나서게 된다. 회사 내부적으로 혼란의 분위기 속에도 대우건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아파트 브랜드 '대우 드림타운' 후속인 '푸르지오' 브랜드를 내세우며 주택사업과 해외 사업에서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2003년 워크아웃을 졸업하게 됐고, 2006년부터 연속 3년간 시공능력평가 1위를 달성했다. 즉 대우그룹 시절부터 대우건설의 시공능력과 규모는 이미 국내 최정상급이었다는 평가다.

당시 대주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대우사태 때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본격적인 매각을 시작하게 됐고, 2005년 최종 입찰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당시 6개의 대기업들과 경합을 벌였는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써낸 매각 금액은 6조6천억원이었다. 2006년 12월 매각이 완료돼 대우건설은 금호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함으로써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한진그룹을 제치고 재계 7위에까지 뛰어올랐다. 당시 인수를 추진했던 박삼구 회장은 'M&A(인수합병) 마이다스의 손', '승부사' 등의 별명을 얻게 되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대형 건설사를 인수함으로써 금호그룹도 삼성의 삼성물산, 현대그룹의 현대건설처럼 강력한 건설사를 보유하게 되는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대우건설의 규모가 금호건설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성기도 잠시,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그룹은 그룹경영에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당시 최대주주였던 금호산업의 자산규모는 겨우 2조원 수준이었는데 6억원이 넘는 인수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입에 의존해 '승자의 저주' 논란을 낳게 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즉 무리한 매각 금액 탓에 탈이 났던 셈이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맞게 된다. 결국 매달 수백억원의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자 금호그룹은 2010년 대우건설을 한국산업은행에 재매각했다.

대우건설은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의 상징과 같았던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를 매각하고, 본사를 광화문에 임대로 옮기는 손실을 입었다. 금호아시아나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결국 두 회사에게 상처만 남게된 꼴이었다. 일각에서는 금호그룹의 몰락의 출발점에 대우건설을 인수했을 때부터라고 일컫기까지 했다.

2010년부터 다시 산업은행 품으로 돌아간 대우건설은 다시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었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2010년대부터 해운·조선업계 불황 등이 겹치면서 산업은행이 매각이라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가 없게 된 탓이었다.

때를 기다린 산업은행은 2017년이 되서야 대우건설 매각을 본격 추진하게 된다. 그러나 매각작업은 쉽지 않았다. 중견건설사인 호반건설이 단독 입찰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지만 대우건설의 해외사업 부실을 이유로 인수를 포기하면서 결국 매각은 불발됐다. 이후 2019년 서울 중구 을지로4가 소재의 대우건설이 시공한 '써밋타워(을지트윈타워)'로 사옥을 이전했다.

대우건설의 새 주인은 작년에 맞이하게 된다. 2021년 6월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중흥건설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흥건설이 가격이 높다며 인수 포기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처음에 중흥건설은 경쟁사인 호반건설이 참여할 것을 의식해 계획보다 입찰가를 높게 제시했었지만(2조3000억원),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호반건설은 응찰하지도 않았고, 같이 입찰에 참여한 DS네트웍스 컨소시엄은 1조8000억원을 써내며 격차가 약 5000억 원이나 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에 산업은행은 두 후보를 대상으로 같은해 7월 재입찰을 진행했는데 여론에서는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 종결을 위해 무리수를 둔다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대우건설은 미국과도 인연이 깊다. 대우건설이 미국 건설시장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1997년부터다. 당시 미국의 세계적인 부동산개발업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뉴욕에 세계 최고층 주거용 건물(트럼프월드타워)을 짓기로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 건물이 '맨해튼 트럼프월드 타워'다.

그 뒤 트럼프 대통령은 1999년 방한하며 당시 대우건설의 수장이었던 김우중 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이 때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을 딴 고급 주상복합인 트럼프타워를 서울에 짓자고 제안했다. 당시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브랜드가 변변찮던 대우건설도 귀가 솔깃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대우건설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국내에서 최고급 주상복합 브랜드로 '트럼프월드'를 사용하게 됐다.

무엇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파트 브랜드가 없었던 대우건설은 '트럼프월드'란 브랜드를 바탕으로 주택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후 '푸르지오'가 대우건설의 브랜드로 자리잡기까지 트럼프월드는 훌륭한 가교 역할을 했다.

최근 대우건설이 중흥그룹과 손잡고 미국 건설시장에 진출 한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업계에서는 이제 막 중흥그룹 품에 안긴 대우건설이 미국 건설시장에서 어떠한 합병 시너지를 낼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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