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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손학규·정동영, 정치권 장악한 11년전 통합신당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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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통합신당 대선 후보 경선서 붙었던 3인방
당시 득표율, 정동영 44%·손학규 34%·이해찬 22%
영향력 가장 약했던 친노계, 文정부 들어 세력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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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시 후보 3인이 현재 당대표가 됐기 때문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11년 전 진보정당은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밀려 지지세가 약했다. 이 때문에 여러 계파가 모여 통합신당을 만들었고, 2007년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 경선에 돌입했다. 통합신당은 컷오프를 통해 5명을 선발했는데, 친노무현계가 단일화를 하면서 이해찬·손학규·정동영 후보가 경선을 치르게 됐다.

당시엔 구당권파를 이끌던 정동영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했다. 득표율로 보면 정동영 43.8%, 손학규 34.0%, 이해찬 22.2% 순이었다. 한나라당 탈당파를 이끌던 손학규 후보가 선전했고, 친노를 대표했던 이해찬 후보는 지지세가 약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영향력은 뒤바뀌게 됐다. 경선에서 꼴찌를 기록한 이해찬 후보가 현재 129석의 집권여당 대표가 됐다. 1위였던 정동영 후보는 교섭단체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14석의 정당 대표가 됐다. 2위였던 손학규 후보는 30석의 정당 대표다.

11년 전 몰락의 길을 걷던 친노계는 현재 친문재인계로 이어지며 정치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해찬 대표는 ‘친노·친문’의 좌장으로 불리면서 이들을 이끌고 있다. 현재 집권여당의 가장 강한 계파는 당연 친문계다.

이해찬 대표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문재인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친노계가 힘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고, 이해찬 대표의 영향력이 더욱 증대됐다. 많은 친문계 후보들이 난입했던 당대표 경선에서 당원들은 이해찬 대표의 경력을 높게 봤다.

11년 전 대선 이후 통합신당이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손학규 대표는 이명박 정부시절 민주당을 이끌며 진보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가 됐다. 그러나 경선에서 2위를 기록하며 대선주자를 해보지도 못하고 지난 2014년에는 정계은퇴까지 선언했다.

손학규 대표는 바른미래당의 전신인 국민의당으로 복귀하면서 안철수 전 대표와 손을 잡았다. 이후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최근까지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바른미래당 당대표 경선에서 무리 없이 당선됐다.

정동영 대표는 입지가 많이 좁아졌다. 2007년 대선에서 진보정당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고 난 후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정치권에는 ‘정동영계’가 많았으나, 최근엔 언급되지 않는 계파다.

한 정당에서 대권경쟁을 펼쳤던 3인이 11년 후 3개의 정당의 각각 당대표가 된 것을 두고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야가 진보진영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이유로 진보정치가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와, 같은 정당에 있었다는 이유로 협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들이 협치를 이룬다면 가장 큰 사안은 선거제도 개편이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소수정당이 불리한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이해찬 대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다만, 이해찬 대표는 개헌을 통해 하자면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패키지로 처리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임대현 기자 xpres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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