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24일 수요일

  • 서울 13℃

  • 인천 13℃

  • 백령 11℃

  • 춘천 12℃

  • 강릉 11℃

  • 청주 15℃

  • 수원 12℃

  • 안동 10℃

  • 울릉도 13℃

  • 독도 13℃

  • 대전 14℃

  • 전주 13℃

  • 광주 13℃

  • 목포 13℃

  • 여수 14℃

  • 대구 12℃

  • 울산 11℃

  • 창원 12℃

  • 부산 12℃

  • 제주 14℃

최태원의 ‘오락가락’ 재판전략···첫 단추부터 잘못 꼈다

[포커스]최태원의 ‘오락가락’ 재판전략···첫 단추부터 잘못 꼈다

등록 2013.07.24 08:32

수정 2013.07.25 08:57

강길홍

  기자

최태원의 ‘오락가락’ 재판전략···첫 단추부터 잘못 꼈다 기사의 사진

횡령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주)회장은 수사 초기부터 범죄 혐의를 감추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재판을 진행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재판 전략은 첫 단추부터 잘못 껴 ‘오락가락’하면서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최 회장의 전략을 되짚어봤다.

◇“펀드 결성·선지급 아무것도 몰라” = 최 회장은 회삿돈 600억원을 횡령하고 임직원에게 성과급을 줬다가 돌려받는 방식으로 비자금 140억원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 중 펀드자금 횡령 혐의가 이 사건의 핵심이다.

최 회장이 개인적인 투자를 위해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끌어들여 구성한 펀드자금을 인출해 김원홍씨(SK해운 전 고문)에게 송금한 혐의다. 김씨는 최 회장의 돈을 받아 선물에 투자해왔다. 검찰은 최 회장이 펀드가 정상 결성되기 이전에 계열사로 하여금 펀드 운용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펀드자금을 미리 지급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펀드자금의 선지급이 유무죄를 가릴 열쇠처럼 보였다.

1심 재판 과정에서 최 회장은 펀드자금 선지급은 물론 펀드조성에도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김씨의 의견과 최 회장 측 변호인들이 협의해 세운 최 회장의 첫 번째 재판 전략이다. 대신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에게 모든 혐의를 돌리기로 했다.

최 부회장은 검찰이 최 회장에게 소환통보를 내리자 검찰에 자진 출두해 펀드 결성과 선지급 지시를 모두 자신이 한 일이라고 자백했다. SK그룹 펀드를 운용했던 베넥스인베스트먼트 김준홍 전 대표도 검찰 면담 과정에서 최 회장이 선지급을 지시했다고 말했던 것과 달리 조서 작성 과정에서는 최 회장은 펀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을 바꿨다.

이 같은 전략은 김씨의 지시이기도 했다. 지난 22일 항소심 공판에서 최 부회장은 “김원홍씨가 자신을 드러낼 수는 없으니 나보고 대신 자백하라고 했다”며 “큰 사건이 아니니 별일 없이 마무리 되고 금방 나올 것이라고 해서 따르게 됐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공개된 김씨와 김 전 대표의 녹음파일에서도 김씨는 김 전 대표에게 재판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지시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최 회장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혐의를 자백한 최재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SK텔레콤 등 그룹의 주력 계열사가 별다는 내부 검토도 없이 한달만에 1000억원대에 이르는 출자금을 조성한 점은 최태원 회장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며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반면 최 부회장에 대해서는 “진술의 신빙성이 없어 범행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김 전 대표도 SK그룹 펀드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펀드 선지급은 지시했지만 송금에는 관여 안했다”=최 회장은 법정구속이 결정되자 마지막으로 “무엇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 일을 잘 모른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이 말도 진실은 아니었다.

최 회장은 항소심을 앞두고 주요 변호인단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태평양 법률사무소로 교체하고 1심에서의 입장을 번복하는 두 번째 전략을 선보인다.

최 회장은 “펀드조성에는 관여하고 선지급을 지시한 것은 맞지만 김씨에게 송금하도록 지시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심에서 선지급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송금을 지시한 것으로 비춰질까봐 어쩔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최 부회장은 “펀드와 관련된 선지급 및 송금 지시와 관련한 1심에서의 주장을 모두 허위진술이었다”며 자신은 이 사건과 아무런 관여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사건을 통해 실제적인 이득을 본 사람은 김씨라며 그에게 책임을 돌렸다. 최 회장의 입장 변화에 맞춰 김 전 대표도 “최 회장이 펀드 결성을 몰랐다”는 1심 진술을 번복하고 “최 회장이 선지급을 도와줬지만 송금은 몰랐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 변화 역시 재판 전략이었을 수 있음이 공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구속된 상태였던 최 회장과 김 전 대표의 접견기록문에는 항소이유서 제출을 앞두고 재판전략을 논의한 정황이 담겨있다.

최 부회장은 최 회장과의 접견에서 “변호사들이 엄청 싸운다. 1심대로 하자는 사람도 있고 다 바꿔야 된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고, 최 회장은 최 부회장에게 “전략을 말해줘”라고 말했다. 최 부회장은 김 전 대표와의 접견에서는 “전략 세우느라 정신이 없어. 항소심까지는 바쁘겠어”라고 말했다.

또한 검사는 “김준홍은 최태원 피고인의 변호사들과 자주 접견했는데 특히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상황에서 항소이유서 내기 직전 2시간 동안 접견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의 입장 변화에 곤혹스러움을 나타내면서도 큰 신뢰를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펀드 결성에 직접 관여하고 송금을 실행한 김 전 대표에 대한 증인심문을 직접 진행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처음부터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김 전 대표가 항소심 공판 초기에는 최 회장의 선지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송금은 몰랐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증언을 고수하다가 심문이 반복되면서 최 회장이 송금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짐작했다고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인 점이다.

김 전 대표는 “직접적인 지시는 최재원 부회장과 김원홍씨가 내렸지만 최태원 회장과 김원홍씨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펀드 선지급금이 김씨에게 보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녹취록 증거 제출로 '우군도 잃고, 재판부 신뢰도 잃어'=김 전 대표의 결정적 입장변화는 최 회장 측이 세 번째 전략 실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측은 지난 2일 무죄를 입증할 증거라며 김씨와 사건 당사자인 최 회장, 최 부회장, 김 전 대표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법정에 제출했다. 재판부가 관심을 보인 것은 김씨와 김 전 대표의 대화 내용이다. 녹취록에서 김씨는 최 회장 형제는 펀드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며 김 전 대표의 동의를 구한다.

재판부는 김씨가 김 전 대표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재판부는 김씨와 최 회장, 최 부회장이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은 증거 가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최 부회장이 검찰에서 첫 조사를 받은 다음날 녹음된 통화내용에 대해서 “실제 피고인 측이 주장하는 날짜에 녹음됐다면 당시 피고인들의 주장을 고려했을 때 정상적인 대화로 보기 힘들고 녹음 시점이 다른 날짜라면 녹음 내용도 거짓으로 봐야한다”고 꼬집었다.

결국 녹음파일은 김 전 대표의 마음만 심란하게 만들었다. 김 전 대표는 녹음파일과 관련해 “당시 김원홍씨와 대화하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최 부회장과 김씨의 녹음파일이 법정에서 재생된 직후, 극한 감정의 소요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녹취록을 미리보기는 했지만 녹음파일은 직접 듣는 건 처음인데 대화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며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최태원 회장에게 인간적인 미안함 때문에 진실대로 증언하지 못한 부분도 있는데 이제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변호인 교체하고 동정심 호소하는 ‘마지막 전략’ = 항소심 재판 과정은 최 회장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갔다. 최 회장은 꼬일대로 꼬인 상황을 풀기 위해 변호인을 교체하고 김씨와의 개인적 관계를 고백하는 마지막 전략을 빼들었다.

최 회장은 지난 16일 공판에서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을 변호인으로 새롭게 선임했다. 또 지난 22일 공판에서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김씨와의 개인적 관계를 고백했다. 특히 “사기를 당했다” “10년 동안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참담했다”는 등 동정심에 호소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전략마저도 재판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이날 최 회장의 고백에 강한 의심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펀드자금의 선지급 과정·경위·동기에 대한 최 회장의 진술이 상식에 부합하지 않아 거짓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한편 22일 공판에서 최 회장은 잘못을 시인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최 부회장은 강하게 혐의를 부인하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이 또한 계산된 전략인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의 입장이 1심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1심에서 모든 혐의 부인하다 유죄 판결을 받았고, 2심에서 일부 혐의를 시인했다. 반면 최 부회장은 1심에서 모든 혐의를 자백했지만 무죄를 선고받자 2심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무죄 주장은 유죄가 되고, 유죄 인정에 무죄가 선고된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재연되기를 바라는 전략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강길홍 기자 slize@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