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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㉜ 취미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㉜ 취미

등록 2020.02.21 10:36

승화(昇華) ㉜ 취미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서른두 번째 글의 주제는 ‘취미’ 다

취미(趣味) ; 고독 가운데 행하는 자신을 위한 열정

대동강 물도 풀리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가 어제 지났다. 아침에는 겨울바람이 늦장을 부지만, 낮은 봄기운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 선조들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일 년을 자연의 변화와 섭리에 따라 다시 24개로 구분하였다. 그 구분이 절기節氣다. 절기는 십 이 개월을 다시 둘로 기계적으로 나눈 것이 아니다.

절기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광선을 받아 자연과 그 안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의 근본적인 변화를 관찰한 구분이다. 절기는 지구 거주자라면, 자신의 몸으로 느껴야할 기운(氣)이다. 우수雨水는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봄기운으로 내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종자를 발아하여 싹을 내야할 결정적이며 운명적인 시간이다.

19세기까지 인간의 수명은 기껏해야 50년이었다. 소수에게만 적용되던 의학의 혜택이 20세기 들어, 대중에게도 전달되었다. 오늘날 수명은 100년 이전과 비교하여,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근대인들의 인생은 가족을 중심으로 정해졌다. 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정한 교육을 받아 직장을 가진 후,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어느새 조부모가 된 인간은, 자식이 결혼하는 것을 보고 손자-손녀를 보면서 인간의 말년을 즐겼다.

이런 구분은 지나간 모델이다. 현대인들은 놀라운 의학의 발전으로, 거의 두 배인 100세 인생을 살기 시작하였다. 첫 오십년은 화목한 가족을 위해, 생물학적인 의무를 위해 전념했다면, 두 번째 오십년은 정신적이며 영적의 의무를 위해 새로운 삶을 살아야한다.

두 번째 삶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습관이 있다. ‘고독孤獨’이다. 고독은 타인과의 만남을 희구하고 혼자 있기를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두려워하는 ‘외로움’과 다르다. ‘외로움’은 불안이며 부족이지만, 고독은 고요이며 온전함이다.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의 저자인 영국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1737~179)은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이해를 증진합니다.
그러나 고독은 자신을 천재로 둔갑시키는 학교입니다.
일생을 통해 이룩해야할 업적의 일관성은 한 예술가의 손길을 의미합니다.”


기번의 통찰은 옳다. 예술가들이나 작가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번이 기술한대로 홀로 지낸다. 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연 과학자들이나 혁신가들은 타인과 어울림만큼이나 자신과의 어울림을 소중하게 여긴 사람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도시 안에서 다른 인간들과 더불어 사는 동물’로 정의하였다.

우리는 이 철학자의 정의에 따라, 인간 행복의 원천은 타인(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인류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우리는 50년을 우리자신이 정한 문법으로 살아야한다. 우리 주위에 창조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고독을 생활화한 사람들이다.

예들 들어 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가족이 없거나 사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데카르트, 뉴턴, 로크, 파스칼, 스피노자, 칸트,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 니체, 그리고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학자들은 외톨이들이었고 뉴턴은 독신주의자였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을 경외나 놀라움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경험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로 치부하였다. 특히 천재적인 업적을 낸 자들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않았고 그들은 종종 정신질환, 알콜 중독 혹은 약물중독으로 아슬아슬한 삶을 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천재적인 인간들은 만족스런 개인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들의 이중적인 천재성이 그들에게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지만, 보통사람들이 즐기는 행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과 우정이 물론 인생을 살만하게 만드는 중요한 자산이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기원전 106~43년)는 인생에서 우정만큼 그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기원전 45년, 환갑을 넘어 인생을 돌아보며 <우정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진정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적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될 만한 가치 있는 사람도 적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눈부십니다. 눈부신 모든 것들은 드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돈만 생각합니다. 친구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을 잘못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정이 없다면 우리는 잘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 삶은 허무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사랑과 우정만큼 중요한 또 다른 자산이 등장하였다. 인간은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나이를 훨씬 넘어 생존하면서,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비인간관계’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새로 설정하려는 노력이 고독孤獨이며, 그 고독 가운데, 자신을 위한 열정이 취미趣味다.

‘취미’는 ‘나’라는 존재를 비교적 정확하게 정의하는 그 무엇이다. ‘취미’는 도시 안에 거주하며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찾으려는 독보적인 놀이다. 나의 직업은 생계를 보장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 직업은 공동체가 원하는 삶에 대한 순응과 충성이 미덕이다. 이 미덕은 종종 체면 지키기와 개성보다는 순응을 요구한다.

‘취미’는 다르다. 내가 나를 위해 정기적으로 시간과 정성을 바쳐 즐기는 창조적인 행위다.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자주 떠올리는 생각, 자주 하는 말,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좋아해서 자주하는 행위, 이것들이 나의 취미다. 취미는 가지각색이다. 취미는 자신의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도 하고 자신의 의도적으로 선택하기도 하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누가 나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내가 자주하는 그것, 취미라고 서슴지 않고 말할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강요도, 방해도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그 일이 나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취미’는 주관적이다. 이성적인 영역이 아니라 감성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객관적인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배움이라는 훈련을 통해, 자신의 판단하는 미의 기준을 전복시킬 수도 있고 강화할 수도 있다. 이 배움이 바로 ‘취미’다. 나는 취미생활을 통해 일상의 사소한 것까지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연습이다. 이 기준이 내 삶의 정체성이며 철학이다.

취미에는 천한 것이 있고 세련된 것이 있다. 천한 취미란, 변덕스럽고 방향이 없으며 일회적이다. 세련된 취미는 방향성이 있고 지속적이며 날마다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것이다. 당신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프티 젠빌리에 강가를 산책하는 리차드 갈로와 그의 개> 프랑스 인상파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 (1848–1894) 유화, 1884, 89 cm x  116 cm 개인소장<프티 젠빌리에 강가를 산책하는 리차드 갈로와 그의 개> 프랑스 인상파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 (1848–1894) 유화, 1884, 89 cm x 116 cm 개인소장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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