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29일 금요일

  • 서울 6℃

  • 인천 6℃

  • 백령 5℃

  • 춘천 8℃

  • 강릉 10℃

  • 청주 9℃

  • 수원 7℃

  • 안동 7℃

  • 울릉도 11℃

  • 독도 11℃

  • 대전 8℃

  • 전주 9℃

  • 광주 9℃

  • 목포 9℃

  • 여수 12℃

  • 대구 9℃

  • 울산 12℃

  • 창원 10℃

  • 부산 11℃

  • 제주 10℃

승화(昇華) ㉛ 사적인 것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㉛ 사적인 것

등록 2020.02.14 09:41

승화(昇華) ㉛ 사적인 것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서른한 번째 글의 주제는 ‘사적인 것’이다

사적인 것 ; 기생충보다 더 감동적인 봉준호 수상소감


자연은 언제나 신선하다. 어제와는 다른 전혀 모습으로 나를 놀라게 만든다. 오늘 아침 산책길은 안개로 자욱하다. 안개로 가려진 아침 해는 오히려 또렷하게 보인다. 약간 기우뚱 서있는 대추나무의 가지가 중심을 잡기 위해 가지를 하늘 높이 올렸다.

맨 꼭대기 가지는 태양보다 더 높이 가지를 뻗었다. 가지가 하늘로 치고 오르는 모습은 거침없이 자유롭다. 우리의 예측을 초월하여 자유자재로 치솟아 올랐지만, 질서정연하고 조화롭다. 지구상 모든 동식물들은 저마다 특별하다. 자신만의 신나는 노래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부른다.

대추나무는 자신이 따라야할 교리도 없고 이론도 없다. 자신이 지닌 독창적인 힘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매순간 분출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대추나무의 가지 끝에는 우주의 기운을 담은 영롱한 물방울을 담고 있다. 그 끝에 매달려 있지만, 앞으로 피어날 새싹을 위해 공간을 마련하는 중이다. 지난 겨울이 가져온 추위와 서리를 녹여 봄기운으로 대치代置하였다.

지난 월요일(2월 10일) 저 대추나무의 가지의 기개와 같은 신묘한 말을 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즉흥적으로 한말이다. 그는 영화감독 마틴 스콜시스가 어디에서가 쓴 책에서 읽었다며 수상소감으로 말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스콜시스가 그런 말을 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은 봉 감독의 진심과 삶이 담겨있다.

내겐 그 한마디가 <기생충>영화보다 더 독창적이며 감동적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적인 것, 개인적인 것이 가장 공적인 것이며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에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여, 가장 은밀한 것이 가장 대중적이며, 가장 고독한 것이 가장 공동체적이다.

올림픽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홀로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시간이며, 위대한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황홀한 순간은, 그가 홀로 연습하는 순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은밀한 공간에서 자주하는 것이 그의 인격이며 성격이다. 고독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훈련이다. 개인이 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그것이 바로 그(녀)다. 더 나아가 그의 은밀한 생각에서 하는 것은 그가 속한 공동체에 그대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가장 독창적인 ‘자기-자신’이 은닉되어있다. 이것의 존재를 깨달아 알고, 그것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 몰입을 통해 한순간에 비쳤다 사라지는 섬광과 같은 자기다움을 믿어야한다. 내면이라는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천재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되어야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 행동 그리고 작업은 숭고한 선율이다. 그 내면에서 발굴한 가장 은밀한 것이 세상에 널리 퍼져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희망을 본다. 자신의 심연을 두르려 숭고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이 언행은 마치 어린아이의 순수한 놀이와 같다.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주위를 환기시키고 집중시킨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행위는 언제나 마력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감동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을 되풀이하거나 깊은 사고 없이 되풀이한다면 겁쟁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아니면 깊은 관조를 통해 얻은 섬광과 같이 빛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가? 이 질문은 위대한 사람과 그저 그런 사람을 구별하는 리트머스 실험지다. 사회는 여론을 따라가라고 조장한다. 순응이 덕이다. 자기의 미세한 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순응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고독이라는 아우라를 친절하고 완벽하게 풍기는 사람이다.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가장 자신답게 만들 그것을 찾아야한다. 그것이 진리眞理다. 진리란 자신의 심연에서 발굴해낸 신비한 자기-자신이다. 그 자신은 나에게 한 가지를 요구한다. ‘자신을 믿으십시오!’ 고대 히브리어에서 ‘진리’라는 단어는 ‘에메쓰˒émeth(אֶמֶת)’다. 이 단어는 ‘믿다’라는 의미를 지닌 상태 동사 ‘아멘˒āmēn’에서 파생한 추상명사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진리’란 가장이 간절히 믿는 것이다.

그 진리는 자신을 저 대추나무의 가지처럼 자유自由롭게 만든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만든다. 새로운 자신은 마치 봄을 기다리는 대추나무와 같다. 나는 내 자신을 믿을만한가? 믿을 만한 나를 발견하여, 그것으로 사는가? 나는 나를 신뢰하는가? 가장 사적이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은 진리다.

가평 설악면 대추나무가평 설악면 대추나무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