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백현 기자
등록 :
2020-01-08 07:01

[정백현의 직언]은성수 위원장의 ‘입’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느슨한 입술은 배를 침몰시킬 수 있다(Loose lips sink ships.)”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지난 1976년 애플을 창업한 직후 사무실 로비 한쪽 벽에 붙여 놨던 격문이다. 이 말은 ‘지나치게 입이 가벼우면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영어 격언이다.

사실 잡스가 이 말을 강조했던 것은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유가 강했다. 신기술을 다루는 기업인만큼 누군가가 말을 잘못 해서 사업의 보안이 유출된다면 회사의 존폐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저 격언을 붙였다고 알려져 있다.

잡스는 단순히 보안 강조 차원에서 저 말을 인용했지만 이 격언을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서 생각해보면 모든 CEO나 지도자가 깊이 새겨야 할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발언의 진중함을 간과한다면 신뢰와 품격이 무너지고 자칫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화법이 최근 금융권 안팎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듣는 사람의 쉬운 이해를 위해 친근한 화법을 활용하며 적극 소통에 나서는 것이 은 위원장의 주특기다. 그러나 때로는 그 주특기가 약이 아니라 독으로 돌변한 사례가 왕왕 일어나서 문제로 지적된다.

은 위원장은 자칫 어둡고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를 특유의 유머로 가볍게 풀어가는 능력이 아주 빼어난 관료 중 한 명이다.

과거 기획재정부 국장 재직 시절 기자들의 질문에 상세한 설명으로 응답하던 간부로 유명했다.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때로는 현안의 민감한 부분까지도 자세히 설명하면서도 정작 민감한 부분의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해 ‘쓰지마 국장’으로 알려졌다.

은 위원장의 화법은 수출입은행장 시절에도 독특했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직후 진행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를 언급하며 “옆집이랑 주먹 싸움을 하다 보면 나도 맞고 옆집 주인도 맞게 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은 위원장의 ‘이웃집 주먹 싸움’ 발언은 수출 규제 조치가 한일 양국에 똑같은 피해를 주는 만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일본에 강력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의 발언이었다.

금융위원장이 된 이후에는 “‘금융 시장의 파수꾼’ 역할보다 ‘금융 시장 이해관계자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를 두고 시장 안팎에서는 “감독당국이 감독을 하지 않으면 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의아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선임과 이를 반대하는 노조 간의 갈등을 두고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은 위원장은 지난 2일 시무식 직후 기업은행장 인선 논란을 지적한 기자들의 질문에 “나도 낙하산 은행장이었다”고 말했다가 논란을 의식한 나머지 보도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또 지난 3일에도 “기업은행 구성원들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애써 말을 아꼈지만 기업은행 노조는 “낙하산 인사를 우스갯소리이자 자랑처럼 여기는 금융당국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며 은 위원장을 비판했다.

사실 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은 위원장의 화법은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기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한마디라도 더 해주는 취재원이기에 당연히 반갑다. 그러나 여과되지 않은 발언이 돌발적으로 나올 때는 웃음과 함께 당황스러움까지 전달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자들과 달리 금융 시장에서는 은 위원장의 화법이 다소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일부 인사들은 벌써 은 위원장에 대해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화 중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해서 스스로 논란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물론 은 위원장의 화법은 상당한 장점을 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말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더라도 금융 시장을 총괄 감독하는 당국자답게 품위를 갖춘 진중한 발언에 나서달라는 것이 시장의 건의이자 조언이다.

실제로 금융권 한 관계자는 “친근한 화법이 때로는 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은 위원장이 가슴에 새기며 새해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가 40여년 전 ‘느슨한 입술은 배를 침몰시킬 수 있다’는 격언을 되새겼던 것처럼 은 위원장도 ‘말(言)의 무게’를 조금 더 생각하는 관료가 되길 희망해본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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