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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등록 2018.03.08 13:43

수정 2018.03.08 14:03

이성인

  기자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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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원경선 - 유기농의 아버지? ‘바르게 살았다’ 하나면 족해 기사의 사진

1981년 서울 압구정동에 작은 채소 가게 하나가 문을 열었습니다. 특징적인 건 한국 최초로 유기농 채소를 취급했다는 점. 가격은 만만찮았습니다. 재래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포장 두부·콩나물은 생소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꼼꼼한 주부들을 중심으로 점차 ‘몸에 좋은 걸 판다’는 입소문이 퍼졌고, 가게는 가파르게 커갔습니다. 가게의 이름은 풀무원 농장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 식품 전문기업 풀무원의 등장이었습니다.

먹는 것 →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바뀌기 시작한 식품의 패러다임. 풀무원은 이런 흐름을 주도한 기업인데요. 이 역할은 유행에 편승한 기획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엔 한 농부의 신념,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경선 원장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지요.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원 원장은 열여섯에 아버지를 여의고 농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잠은 3시간만 자는 등 유달리 부지런했지요. 해방 후엔 토목공사로 돈도 꽤나 모았습니다.

“사업은 번창했다. 접대하고, 뇌물 주고··· 싫어도 그렇게 해서 굴러갔다.”

그러던 중 트럭 사고가 닥칩니다.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 원 원장은 그때까지의 생을 돌이켜보곤 껍데기 같았다고 판단 내렸는데요. 한국전쟁의 참상까지 온몸으로 겪고 나서는 삶 전반을 갈아엎기에 이릅니다.

1955년 경기도 부천 땅 1만 평을 개간해 풀무원 농장을 마련, 전쟁고아들을 비롯한 오갈 데 없는 이들을 농장으로 받아들인 것. 나누고 베푸는 공동체적 생활의 출발이었습니다.

『원경선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먹을 만큼만 남기고 다른 사람과 나누면 이 세상에 아무도 굶주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 2010년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42쪽 中. 창비

1976년엔 경기도 양주로 농장을 옮겨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국내에서 처음으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 유기농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첫 유기농 단체인 ‘정농회’를 설립하기도 하지요.

‘바른 먹거리’를 슬로건으로 이젠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성장한 풀무원, 그 뿌리엔 바로 원 원장의 이 같은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풀무원이란 이름은 농장에서 시작했지만, 풀무원이 그 이름을 키웠으니 잘 써라. 다만 모든 제품에 생명존중과 이웃사랑의 정신이 깃들게 해라.”

원 원장은 공동체 운동으로 출발한 이타적 삶을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아와 전쟁, 공해로부터 인류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환경운동 및 생명보호운동, 평화운동으로까지 확대해가지요.

아프리카 기아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하며 그 참상을 국내에 알리고,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창립에 초석을 마련하는 등 빈곤 타파 운동에 앞장선 것도 그 일환.

2009년 기아대책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선 “세계 63억 명의 인구 중 10억 명이 굶고 2초에 한 명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기아대책은 나와 내 가족을 넘어 이웃과 인류의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라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후원자와 기업들의 참여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생명이 없는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어가자.”

원 원장은 이 같은 공로들을 인정받아 1995년 유엔의 글로벌 500상을 받았습니다. 상금도 특혜도 없지만 사회운동가들에겐 더없이 영예로운 상. 원 원장은 유기농으로 이 상을 받은 최초의 인물로도 남아 있습니다.

평생 타인과 함께 살기에 대해 고민했던 원 원장은, 2013년 100세를 일기로 작고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원경선은 바르게 살았다’하는 걸 남기는 것.”

이웃사랑과 생명존중을 실천한 ‘농부’, 유기농을 비롯한 우리 삶 속 그의 유산들. 원경선 원장의 소원, 이 정도면 이뤄졌다고 봐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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